지방화 시대를 맞이하여 지역신문이 ‘진도실록’의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에는 향토역사를 기록하는 사관이 없으니 자연 지역신문이 그 역할을 담당할 수밖에 없다.
진도에 지역신문이 등장한 것은 16년 전인 1991년부터다.
16년 동안 진도에는 8개의 지역신문이 창간되었으나 사세의 열악 등으로 여러 부침단계를 거쳐 지금은 예향진도신문사, 진도타임즈, 그리고 주간진도신문사 만이 격주로 발간이 되고 있다.
열악한 재정으로 진도사록을 이끌고 있는 분들께 이 자리를 빌려 존경을 드린다.
조선시대 사관은 품관은 비록 낮았지만(종7품) 좌측사관은 지근거리에서 왕의 행동을, 우측사관은 왕의 발언과 언행을 빠짐없이 기록했었다.
일거수일투족이 지워지지 않는 영원한 역사로 남겨진다고 생각하면 임금인들 어찌 매사에 신중을 기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란 단지 그날그날의 사실을 기록하는데 그치지 않고 하늘을 우러러 또 후세에 한 점 부끄럼 없게 오늘의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경고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 역사다.
한 점 부끄럼 없이 시시비비를 그대로 기록하는 것이 역사라는 것이다.
<일제시대 기사 5백여 편 새로 찾아내>
2002년 문화원에서 일제시대 기사들을 모아 ‘진도신문기사자료집’을 발간한바 있는데 이번에 동아, 조선, 시대일보 등에서 필자의 지인이 총500여 편의 일제시대 진도기사를 또 찾아내었다.
이 시대 진도의 시대상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들로 기사 중에는 못된 관리나 지주들의 행적 또는 선행들이 적나라히 밝혀지고 있으니 신문의 역할이 중요함을 새삼 느끼게 한다.
<실록의 보관상태>
관공서에서 중요한 사료가 될 수 있는 스크랩 등 각종자료들은 대부분 보존기간이 지나면 폐기처분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지니 안타까운 일이다.
혹자는 기관장이 이임하고 나면 각종 팜플랫 등은 남지 않느냐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알다시피 이 자료들은 치적 홍보용 ‘용비어천가’로 그 가치를 찾기란 어렵다.
조선시대 실록은 객관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왕조실록’은 그 임금이 죽은 후 에야 실록청에서 승하한 왕의 행적을 기록 했다.
외부 압력을 피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왕들은 자신의 행적기록을 보지 못했으며 왕위가 세습되었기 때문에 후대왕도 선대왕의 기록을 보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따라서 사초하는 사관은 왕을 욕하고도 무사할 수가 있었다.
지금은 품관이 있는 사관은 아니지만 지역신문이 사관과 실록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신문이 곧 실록이요 신문사가 실록청의 역할을 맡고 있다는 말이다.
지금은 자료정리가 더욱 쉬워진데다 컴퓨터나 CD가 예산과 시간을 크게 절약시키기도 한다.
왕조실록은 모두 1천3백93권에 달했으나 지금은 단 3장의 CD에 들어가 있다.
왕조실록에서 보이듯이 지역신문도 진도군의 역사를 사실대로 기록해야 한다.
그래야 참된 실록이 될 수 있다.
또한 실록은 올발라야 한다.
편견이나 감정이 개입 되어서는 가치가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렇게 중요한 기록들이 보관상태가 엉망이다.
심지어 신문사에서조차 빠뜨린 자료들이 많이 있다니 한심스런 일이다.
물론CD에 모두 담겨 있는지 모르지만 원본이 없어서야 되겠는가.
이 같은 원인은 신문사들의 열악한 재정 상태에 기인됨이 그 한 원인임은 물론이다.
왕조실록은 그 숱한 전화 속에서도 살아남아 역사를 밝히고 있다.
진도역사를 묵묵히 엮어나가고 있는 실록청인 지역신문에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할 것이다.
또한 지금부터라도 지자체 당국은 신문자료뿐 아니라 모든 발간물을 빠뜨림 없이 찾아 보관하는 기록보관소(사고)를 만들어 만세에 남겨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