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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날짜 [ 2006년05월17일 00시00분 ]

엊그제는 우동국수가락 같은 비가 밤새 쉬지 않고 내렸다. 100mm가 넘는 양의 비였다. 잔뿌리를 통해 물을 삼키면서 다른 영양분까지 흡수하는 식물들은 오랜만에 포식을 한 모양이었다. 연두색 잎들이 며칠 사이에 진한 녹색을 보이면서 혈색이 반들반들하다. 비 오기전에 심은 참외, 수박, 옥수수, 대파들은 하늘이 내려준 영양식이 좋아 죽겠단다. 때마침 불어주는 바람에 갓난아이 손바닥만한 잎사귀를 팔랑대면서 건들건들 까불기까지 한다. 영락없이 젖배 부른 철부지아이, 바로 그 모습이다.
"그케 좋냐? 느덜이 좋다항께 나도 좋다!"
그러나 또 한쪽은 너무 많은 비 때문에 밭이 씻겨서 고랑이 긴 곳은 중간중간에 도랑이 만들어질 정도로 패이면서 아래쪽은 토사가 밀려있다. 수확 손실이고 팔뚝 굵어지게 삽질해야 하는 일감이다.
더구나 녹색 파도 일렁이던 논보리는 수확기에 접어들면서 노란 색깔로 치장을 하고 있는데 그 모양새에서 불안한 기색이 역력하다. 5mm안팎의 수분 정도가 적당한데100mm가 넘는 물이 허리께까지 차서 찰랑거리니 여태껏 즐겁게 번식의 의무를 잘해왔는데 애써 키운 자식의 앞날에 먹구름이 낀 듯싶은 것이다. 새끼를 키우는 부모는, 동물이건 식물이건 없는 힘을 만들어낸다. 그래서인지 영양생식을 끝낸 뿌리는 사력을 다해 버티고 있다. 허리나 익어가는 보리이삭이 물러지게 하지 않으려는 본능적인 저항이고 투쟁인 것이다. 농사꾼에게는 그 몸짓이 고마움으로 고스란히 전율처럼 전달된다.
"느덜이 그케 애써준께 영농자금도 못 받는 이 보릿고개를 이케저케 넘길성 싶다!"
먹을 것이 없어 배곯던 시절의 보릿고개가 딱 이맘때쯤일 것이다. 작년 가을에 거둔 곡식 바닥나고 보리는 아직 덜 익어서 타작할 수 없는 시기! 그래서 배고픈 철부지들은 어른들 몰래 덜 여문 보리이삭 뜯어서 으슥한 곳에 숨어서 고소한 냄새로<풋보기 서리하고 있음!>을 동네방네 광고하던 때였다. 아이들의 그 공공연한 비밀은 어른들의 회초리를 무력하게 했을 것이다. 먹을 것이 넘쳐나는 비만의 시대에도 농사꾼들은 여전히 보릿고개를 겪고 있다. 작년에 농사지어서 빚 갚는데 다 바치고, 올해 농사지을 비용 용도로 영농자금이라는 빚을 다시 쓸수 있는 집구석은 그나마 생산적으로 돌아간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빚의 이자를 갚지 못해 연체되고 있을 경우에는 그나마 영농자금도 받지 못하고 농사를 시작해야 한다. 작은 동전으로 메워가더라고 뚫린 구멍 막아가고 있다는 희망의 냄새, 규모 있는 화폐 냄새에 대한 굶주림이다.
“보리야,보리야! 얼릉얼릉 익어라!”
“너 익으믄 마흔 살 총각 장개간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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