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산둥성 농업 연수 보고를 마무리하며>
“진도 대파와 배추 농업을 위협하는 산둥성 농업 현장을 돌아보며 슬픈 구호를 외쳤고, 중국도 곡물 6,000만 톤을 수입하는 농산물 수입국이라는 사실에서 우리에게도 기회가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진도 대파는 진도 농업의 상징이다. 40여 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재배되면서 효자 품목으로 역할을 해왔으나 2000년 초부터 ‘대파가 망하면 진도가 망한다’는 신조어가 생겨났고 공식적으로 일곱 번 폐기를 되풀이했다.
진도대파의 명성유지, 수급조절, 판매교섭력 향상, 가공 건조, 대체작목 개발은 진도농정의 중심 화두이다. 농민회가 처음으로 관으로부터 보조금을 받고 연수를 가게 된 것도 진도농정의 한 축으로 그동안 활동해왔고 앞으로도 대안을 찾아야 하기에 대파 문제 해결 방안을 고민하는 차원이었다.
그러나 연수 첫날부터 마음이 편치 않았다. 세월호 참사의 와중에 외유를 했다는 언론보도가 있었다. 또한 연수 뒤에도 며칠간 멍하니 지냈다. 왜냐하면 중국 산둥성의 농업 규모를 체감했고, 한국으로 수출하기 위한 그들의 준비 상태를 눈으로 확인함으로써 다가온 충격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중국 채소 생산의 중심지 산둥반도를 돌아보며 목격한 것은 첫째, 광활한 농경지였다. 산둥성만 하더라도 한국의 농경지 면적보다 넓었다. 하루 종일 버스로 달려도 지평선으로 이어지는 벌판을 보며 우리는 “아!”하며 탄성만 낼 뿐이었다. 중국 채소의 본고장 수광시의 비닐하우스 바다에서는 계절을 가리지 않고 각종 과채류가 무한대로 생산되고 있었다.
둘째, 대파농장 견학이었다. 경지 정리된 밭 한 단지가 6,000평이었고, 돌 하나 없는 사질양토에 관수 시설 또한 수준급이었다. 가슴까지 차오른 대파를 보니 진도 대파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의미 없는 일이었다.
셋째, 대파를 가공하여 한국으로 수출하는 공장 견학이었다. ‘신선대파’라고 포장하여 관세 27% 부과 후 가락시장에 상장하면 1,050원 수준에 경매된다고 했다. 이에 비해 진도대파의 가격 경쟁력은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넷째, 대파 냉동 및 건조 공장의 견학 시도였다. 이번 연수에서 가장 가보고 싶었고 현장 관계자들에게 여러 가지를 물어보고 싶은 곳이었다. 왜냐하면 ‘진도대파로 냉동이나 건조하여 상품화하는 데 경쟁력이 있을 것인가?’를 확인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진도대파의 재배 시기 조절, 출하처 분산, 폐기시 임시저장으로 출하시기 조절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농심이나 삼양 라면 회사에서 기업 비밀과 기업 이미지 때문에 거절하여 참으로 안타까웠다.
<중국 장구대파는 3000천년 전부터 재배되었다고 한다. 그 가운데 대오동이라는 품종은 평균 150~170cm까지 크며, 최장 240cm까지 자라기도 한다. 연백부만 평균 1m정도다. 대파 한 뿌리가 보통 1~3근이라고 하니 '대파왕', '세계 제일파'라는 별칭을 얻을만 하다. 장구대파는 다른 파에 비해 매운맛이 약하고 단맛이 강하며, 수분이 많아 아삭한 식감을 가졌다고 한다. 장구지역에서는 대파왕을 가리는 다양한 품평회가 열리고 있다. 품종개발과 재배기술, 유통을 위한 포장과 가공 그리고 마케팅까지 우리와 비교 할 수 없었다. 누가 중국 농업을 비웃을 수 있겠는가?>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옛말이 있듯이 농수산물 유통공사 청도 지사장의 ‘중국농업 산둥성 농업 현황 세미나’와 청도시 중산층이 이용하는 대형 마트 방문에서 나름대로 우리농업의 활로에 대한 희망을 찾아보았다.
첫째, 중국농업 현황을 보면 중국농업도 점차 상업화되면서 과일 채소 생산량은 급격히 늘어나지만 곡물 생산량은 완만하게 증가하고 있었다. 결국 수요량을 감당하지 못해 수입량 또한 급격히 늘어남을 알 수 있었다.
2013년 기준 중국의 콩 단일 품목의 수입량이 1년에 6,000만 톤으로 우리나라 전체 곡물 수요량 2,000만 톤의 3배에 이르렀다. 밀은 550만 톤, 옥수수는 330만 톤이다. 중국의 절대적 인구증가, 산업화되어 가는 나라들에서 곡물가공 증가, 육류 소비가 늘어나면서 가축의 사료 원료인 옥수수·콩·밀의 수요가 증가함을 알 수 있다. 중국도 돈이 되는 채소류 농업이 확대되다보니 식량 생산을 소홀히 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나라의 농정 핵심은 충분한 식량의 확보인데, 우리나라는 식량안보나 식량주권의 중요성을 망각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쌀 이외 식량 자급률이 1% 내외인 현실(쌀포함 23%)을 비춰보며 식량 자급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따라서 진도군농민회에서 추진하고 있는 <직불금 확대를 통한 우리밀과 밭곡물 자급 조례>를 하루빨리 제정하여, 대파의 대체작물로 수급조절과 식량자급을 높이는 일석이조 효과를 얻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둘째, 900만 인구가 살고 있는 청도시 중산층이 이용하는 대형 마트에서 농산물 가격은 우리나라 마트에 비교해 비슷하거나 오히려 비싼 것도 많았다. 유기농 대파 500g에 13위안이었다. 우리 돈으로 2,232원이다. 중국으로 농산물 수출 가능성이 있음을 확인했다.
중국과 FTA로 농산물에 관세가 없어지면서 채소의 경쟁력은 더욱 떨어질 것이다. 쌀 고 관세화율 유지 문제도 중국이 가장 걸림돌이다. 진도의 대파나 배추 농업은 갈림길에 서 있다.
정부에는 FTA에서 대파·배추·양파·고추 등을 초민감 품목으로 지정하여 국내가격이 기준가격 이하로 내려갈시 수입제한 조치를 하도록 요구하고 쌀의 관세 인하는 국회의 동의를 받도록 하는 최소한의 장치라도 해야 할 것이다. 지방자치 단체 차원에서는 대파 배추의 수급 조절 대체 작물 개발, 상품성 향상을 위한 지력증진 토양 개량 방안, 계약재배를 활성화할 수 있는 농안기금의 활용방안, 지역농협과 청정푸드벨리는 판매사업 확대, 대량 수요처 발굴, 저장 가공 사업을 실시해야 한다. 생산자 차원에서는 수급조절을 위해 군과 농협에서 실시하는 사업에 신뢰를 갖고 참여하면서 품질 향상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진도군 농민회에서는 조직 내부적으로 연수 효과에 대해 회의적이었고, 군 지원에 의존한 연수에 비판적 입장이 있었다. 중국 농업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 곧바로 대안을 제시하는 데 한계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 연수를 통해 중국 농업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한 방향을 설정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또한 진도 농민들과 군민들에게 공개적으로 보고하여 날카로운 비판과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면서 진도 농업을 지키고 진일보시키는 데 선발대 역할을 성실히 실천하기로 했다.
끝으로 이번 농업 연수를 지원해 주신 군수님과 군 의원님들께 감사드리며, 귀중한 지면을 제공해 준 진도신문에도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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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8일(5일차)
<청도대형마트 친환경농수산물 코너 - 시내 탐방 - 청도공항>
<청도의 한 대형마트에 진열된 친환경 농산물 매장, 유기농 대파 470g에 2,244원, 상추 322g-1,640원, 당근 130g-2,175원, 가지 600g-1,692원, 정구지(솔) 262g-1,951원, 생강 178g-915원>
마지막 날, 연수단이 머문 호텔은 이른 아침부터 부산했다. 하루 평균 7시간 버스를 타고 장거리를 이동하는 강행군과 입맛에 맞지 않은 음식을 먹고 더부룩함에 시달리던 연수단은 지쳐 있었다. 게다가 우리나라보다 10년 이상 뒤쳐져 있을 것 같았던 중국 농업의 잠재력에 놀라면서 누구나 마음이 헝클어져 있을 터였다. 그 때문인지 서둘러 짐을 꾸려 로비에 모여드는 회원들의 표정에서는 연수 첫날의 패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아침식사를 간단하게 마친 연수단은 오전 9시께 버스에 올라 마무리 일정을 시작했다. 목적지로 이동하는 동안 곽길성 농민회장은 “이번 농업연수의 의미를 되새겨보고 한국에 돌아가서 운동 방향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 보자”고 제안했고, 장부식 부회장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중국 농업의 참모습을 보고 두려움도 생기지만, 반대로 내성도 생겼을 거라 믿는다. 우리밀 등 식량자급 조례 제정과 농작업지원 사업 등 우리 농민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대안을 찾고 실천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라 말했다.
연수단이 도착한 곳은 청도의 대형마트였다. 그곳은 재래시장과 달리 친환경·유기농 농산물이 유통되고 있고 한국제품들도 전시·판매되고 있었다. 청도 도시주민들의 생활 수준이 한국 중산층 못지않은 만큼 그들이 소비하는 채소와 식료품의 품질과 형태도 고급스러워 보였다.
<상좌-소포장 대파, 상우-경복궁 식당, 아래-견과류 진열대를 둘러보는 여성 회원들>
중국 농산물은 ‘저품질에 값이 싸다’는 인식과 달리 식료품 매장에 진열된 농산물들은 신선도부터 품질과 포장까지 고급화되어 있었다. 가격도 한국산에 비춰 싼 편이 아니었다. 눈에 띄는 것은 친환경·유기농 매장에 진열된 채소였다. 중국도 농산물 품질을 높이기 위해 친환경 재배를 장려하고 있었다. 이에 호응하듯 유기농산물 코너에 손님들이 끊이지 않았다. 일본과 한국이 중국산 수입 농산물에서 검출되는 농약 때문에 주기적으로 먹거리 파동을 겪고 있는 동안, 역설적으로 중국에서는 유기농산물의 대중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 마트 식료품 매장에는 한국산 제품도 한 코너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대부분 김치와 라면 종류였다. 우리의 시골 재래시장까지 점령하고 있는 중국산 농산물에 비하면 그곳은 한국산 견본품 전시대 같은 느낌이었다. 연수단이 마트에서 머문 시간은 1시간 정도였다. 몇몇 회원들이 청도맥주 세트를 사거나 견과류 제품을 구매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빈손으로 매장을 빠져나왔다. 회원들의 두 손은 가벼웠어도 두 발걸음이 무거워 보였다. 과연 한국산 농산물이 중국시장에서도 눈길에 채일 정도로 흔해지는 날이 올까?
연수단은 청도 시내에 있는 ‘경복궁’이라는 한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경복궁에서는 채소농장과 김치 가공공장도 운영하고 있었다. ‘경복궁김치’는 청도에서 한국김치 브랜드로 이름이 나 있었다. 대상 그룹의 ‘종가집 김치’와 마찬가지로 김치 산업의 현지화로 중국시장과 한국시장을 쌍끌이하겠다는 전략을 펴고 있는 것이다. 과거 중국산 김치는 한국산과 맛에서 큰 차이가 있었으나 현재는 맛과 신선도에서 차이가 없다. 중국산 수입 김치가 1kg당 500~600원인데 비해 국산은 2500~3000원 선이다. 한중 FTA가 체결되고 25% 가량 적용되던 관세가 사라지면 가격 차이가 더 벌어질 게 뻔하다. 한국 농민들과 농업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은 정작 중국 농산물 자체가 아니라 자국 농업을 죽임으로써 자신들만의 이익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투기자본세력’일 것이다.
식당 한켠에 타블로이드판 신문이 놓여 있었다. 청도에는 5만여 명의 한국인들이 거주하고 있고, 교민회에서 ‘칭다오저널’이라는 신문을 발행하고 있다. 7월 1일자 신문에는 주로 상업활동을 하는 교민들 소식을 다루고 있었는데, 경상남도 산동사무소에서 개최한 ‘中진출 기업 네트워크 활성화 위한 간담회 개최’라는 기사가 눈에 띄었다. 간담회에서는 청도 주류시장에 진출해 판매망을 구축하고 있는 (주)무학소주(좋은데이)의 성장 실적을 다룬 것으로 보였다. 전라남도 산둥사무소가 존재한다면 붉은 빛깔을 좋아하는 중국인들에게 ‘진도홍주’를 한국의 대표 전통술로 소개하고 판매하는 전략을 세우면 좋을 것 같았다.
중국 청도에서 예정된 일정을 마친 연수단은 오후 5시경 비행기를 타고 인천으로 향했다. 청도에서 인천까지는 가던 길과 마찬가지로 한 시간 거리. 반도와 반도 사이에 놓인 바다를 하늘길로 가로지르는 동안 마음속에서는 아쉬움이 포말을 일으키며 울렁거리고 있었다. 중국, 그리고 중국 농업, 중국농민은 어떤 모습일까 생각하면서도 큰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농업을 두 눈으로 확인하게 되면서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예상하지 못한 놀라움은 결국 연수단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인천 공항에 도착한 연수단은 다시 진도로 출발해 19일 새벽 1시경 진도향토문화회관에 도착했다. 누군가에게는 짧고 또 누군가에게는 긴 시간이었을 테지만, 누구나 이번 연수에서 중국 농업의 숨겨진 역량을 체험하고, 우리 채소 농업이 가야 할 길을 가늠해 보았을 것이다. 연수를 떠나기 전에는 중국을 우리가 극복해야만 할 경쟁국이라 생각했지만, 돌아오는 길에는 거대한 시장을 한 바퀴 둘러본 느낌이었다. 연수단이 마음속 배낭에 담아올 수 있었던 것은 찌모루 시장의 짝퉁 기념품이 아닌 중국의 진짜 농업, 진짜 농민, 진짜 농산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