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미 협회장소개
소속: 부산대학교병원 (연구교수)
가족: 배우자 김진목 교수 (부산대학교 병원)
학력: 부산대학교 대학원 교육학과 박사 (심리학)
수상: 2010년 대한민국을 빛낸 21세기 한국인상 교육부문 대상
2010년 대한민국 대표강사 33인 선정
경력: 2012.05~ 부산대학교병원 통합의학센터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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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음악치료사라는 분야 생소할 수 있습니다.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최근에 음악치료사가 많이 알려지긴 했습니다. 사실 음악치료사라고 불리는 직업은 우리나라에 없습니다. 대신 심리치료사라고 총칭을 하고 있습니다. 고용노동부에 검색을 하면 음악심리지도사가 정식 명칭으로 등재 되어있습니다. 음악심리지도사는 명칭 그대로 음악을 가지고 신체적 정신적 결함이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직업입니다.
Q. 어떠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 분야인지요?
음악치료사의 매력은 신앙과 같습니다. 사람들은 힘들 때 신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고, 희열과 은총과 편안함을 얻습니다. 그것으로 인해 자신의 삶은 변합니다. 변하려고 노력하게 되고, 열정을 가지고 삶을 새롭게 살아가는 경험을 하는 것처럼 음악치료사로서 활동을 하다보면 신앙에서 얻는 희열, 기쁨, 살아가는 목적, 삶의 여러 가지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음악은 예술이고 치료는 헌신이며, 음악치료는 사랑입니다.
Q. 음악치료학에서 자폐아동을 포함한 아동음악 치료영역이 가장 크다고 들었습니다. 아동치료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많은 분들이 음악치료하면 지금까지는 아동을 위한 음악치료라는 생각을 하십니다. 음악치료학은 음악만이 아니라 사회학, 교육학, 청소년학, 노인학 등 여러 가지 학문들이 융합되어 만들어진 융합학문입니다. 외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도 먼저 장애 아동을 치료하는 목적으로 시작이 되었습니다. 장애우가 올바른 사회적 일원이 되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것은 언어입니다. 그런데 음악이외의 교육적 자원을 가지고는 아이들이 반응을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에게 교육을 하면 말은 노래를 통해 나타날 것이고, 숫자는 음악의 리듬과 박을 통해 알 것입니다. 또 음악의 전체적인 것 안에서 아이들이 가져야할 여러 가지 품성들, 자신감등을 키울 수 있는 영역이 음악 안에 다 들어가 있습니다.
Q. 아동 이외에 다른 대상들의 경우는 어떠합니까?
제가 특수교육을 10년 이상 해왔지만 장애우가 일반학교로 진학하는 확률이 기대치보다 많이 떨어지는 것이 현실입니다. 현재 세계 음악치료계는 노인들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노인들을 인지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청소년의 경우, 인터넷・게임 중독이 있습니다. 특히 국제결혼으로 만들어진 다문화 가정의 2세들이 이제는 사춘기가 되었습니다. 그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정서적 취약적 결함 등이 있을 것이 때문에 다문화 가정에 대한 치료의 필요성이 부상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장애아동들이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는 것보다 일반인들이 만드는 문제들이 크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음악치료가 장애아동에 대한 음악치료 틀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서 청소년, 노인, 일반인까지 범위를 확장하게 된 것이죠.
Q. 음악치료사가 되려면 어떤 성향을 가져야하고 어떤 방법을 통해 될 수 있습니까?
지금까지 음악치료사를 양성할 때는 음악을 전공해야 되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음악전공자 수준의 지식을 많이 요구하지는 않습니다. 치료대상들에게 음악을 교육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음악성 정도면 됩니다.
많은 분들이 알듯이, 음악치료사는 경제적으로 크게 여유로움을 주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돈과 같이 외부적인 것 보다는 사람에 대한 관심과 사랑과 배려가 필요합니다. “저 사람은 틱장애이고 불안한 증세를 가지고 있다.” 보다는, “저 사람은 왜 표정이 저럴까? 어떤 일을 당했을까? 오늘 기분은 어떨까?” 하는 사람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환자를 봐야합니다. 치료사는 의료인이면서 심리학자이고 교육학자, 사회학자입니다. 그래서 대상의 전체를 봐야합니다. 이기적이고 주관적인 생각보다 배려, 사랑, 봉사 등의 성품이 필요한 것입니다.
Q. 음악치료사가 된 계기는 무엇인지요?
아버지가 음악을 하셔서 어려서부터 피아노와 작곡을 배웠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교사셨는데 어린 마음에는‘왜 저렇게 따분할까 왜 저렇게 성실할까’하는 생각에 음악이 싫었습니다. 저 또한 교사가 되었지만 교사를 시작한지 한 달 만에 사표를 내고 유학을 갔습니다. ‘내가 가장 잘할 수 있을게 뭘까’ 하고 생각해보니 어릴 때부터 했던 음악이더군요. 음악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가지고 어려운 계층,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즐거움을 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음악치료사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쭉 10년 동안 음악치료를 하다 보니 음악치료 기술만으로 치료가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봐야한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사람을 보기위해 다시 국내에 들어와서 상담심리학을 10년 동안 석・박사 과정을 거쳤습니다.
어쩌면 아버지에 대한 반항으로 시작했지만, 음악치료를 하면서 가장 감사한 분은 바로 아버지입니다.
초기에 국내에서 강의할 자리가 없어 너무 힘들었던 시절, 시립정신병원에서 프로그램 활동을 할 때였는데 환우들의 반응이 너무 좋았던 적이 있습니다. 그 행복한 순간에 아버지 생각이 왜 떠올랐는지 모르겠더군요.
처음에는 음악치료를 할 때‘클래식을 해야 한다.’는 선입견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배워왔기 때문인데, 환우들은 클래식만 틀면 졸려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가을에 코스모스가 피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곡을 김상희씨의 <코스모스>로 변경해서 보니 환우들이 반응이 바로 나타났습니다. 기분이 좋아진 환우들의 얼굴에서 가을의 느낌들, 감동들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기쁜 마음으로 아버지께 전화를 했습니다. “아버지 접니다. 저에게 음악을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하니 아버지께서는 “이놈아. 이제 알았더냐 ….”라고 하셨습니다. 그 때가 아버지와 화해한 계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다른 분야에도 관심이 있었지만 아버지에 의해 시작한, 그 음악이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던 것이었습니다.
Q. 현재 한국음악치료사협회의 회장님이시면서 치료사로서, 또 대학 교수로서 굉장히 바쁘실 것 같습니다. 교수님 또한 업무와 생활 속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해소하는데 음악의 도움을 받으실 것 같습니다.
음악은 공기와 같습니다. 어떤 곡을 좋아하고 꽂히면 석 달 내내 그 것만 듣습니다. 지금은 바빠서 그렇게 심취하지 못하지만, 언제나 숨 쉬듯이, 피곤하고 지칠 때 음악을 가까이 할 수 있도록 하고 항상 음악에 깨어 있을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또 음악이 있기 때문에 영화를 좋아합니다. 서울에 출장을 자주가 다보니 KTX 안의 영화 칸에서 짬짬이 봅니다. 음악과 삶의 스토리가 있기에 영화를 즐깁니다.
Q. 가장 치료가 잘된, 또는 기억에 남았던 환우가 있습니까?
첫 강의를 부산 1999년 9월에 했습니다. 첫 학기 첫날에 남학생이 질문을 했습니다. “교수님, 임상을 많이 해오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가장 치료가 잘 된 케이스를 말씀해 주십시요.” 오리엔테이션에서 그런 질문을 받을 줄은 몰랐습니다. 그래서 “가장치료가 잘된 케이스는 나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내성적이 성향을 가지고 음악을 하다 보니 이기적으로도 굳어져있는 상태였습니다. 대학 친구들은 “정미 너는 걸어갈 때도 땅만 보고 간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부산대학교 음악치료사과정에 교수로 제 이름이 올라와있을 때 친구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정말 아픈 사람들을 보고 정말 힘든 사람들을 보니 내 주변인이 너무 소중하고 내 하루가 정말 소중한 시간임을 배우고 돌아올 수 없는 시간임을 깨달았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환우 분은 지금은 돌아가신 할머니입니다. 노인 병동에 가면 기쁘기보다는 항상 마음이 무겁습니다. 왕년에 밖에서 무슨 일을 했던 노인 병동에 3개월만 있으면 무력해지죠. 정체성, 인간성을 잃고 자신의 이름도 모르게 됩니다. 10년 정도 병원에 계신 할머니도 그러한 상태였습니다.
할머니들이 가장 좋아하는 곡은 젊은 시절에 불렀던 곡입니다. 다른 것은 다 잊어 버려도 노래는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몽금포타령, 쾌지나 칭칭나네, 동백아가씨 등 읽으실 줄은 모르지만 반주만 나오면 노래를 부르십니다. 동백꽃 색깔이 뭐냐고 여쭤보면 모릅니다. 하지만 동백아가씨를 부르고 나면 동백꽃색깔을 말할 수 있습니다. 음악을 통해 인지가 활성화되는 것입니다.
그런 음악치료를 하는데 할머니가 고향노래를 부르면서 그날따라 기운이 넘치셨습니다.“할머니 고향이 어디세요?” 라고 하니 좀 있다가 마산이라고 했습니다. 사실 따님이 와도 기억을 못하시는데 내손을 잡으면서 “우리 딸이 효녀야” 라고 하셨습니다. 마침 따님이 오셨었는데 그 말을 듣고 울고 계셨습니다. 그 것이 할머니의 마지막 딸에 대한 기억과 고마움을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그 일 후 두 달 뒤에 돌아가셨습니다.
Q. 한국음학치료사협회가 올해로 15주년이 됩니다. 협회장으로서도 다양한 상들도 받으셨는데요. 협회장으로서의 부담감이나 책임감이 클 것 같습니다.
회장으로서의 부담감보다는 특히 심리치료사들에 대한 사회적 배려, 윤리강령, 직업의식 등이 체계화 돼 있지 않은 것에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복지사가 많이 필요하게 된 제도가 만들어지면서 어린 복지사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복지사가 치료사를 관리하는 위치라고 생각하죠. 그래서 음악치료사들은 음악전공자로서 자부심이 상할 때도 있습니다. 또 복지관을 치료를 위해 개방해주지 않았습니다. 치료사가 상주가 아니고 일주일에 한번 씩 오는 입장이다 보니 더 좋은 치료를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복지사에게 먼저 인사를 드립니다. 그래서 음악치료사들이 역량도 중요하지만 대외적으로 제대로 대우를 받을 수 있고 제대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협회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협회의 인사말 중‘치료사의 사회적 권익을 보호하는 한국 음악치료사 협회가 음악치료사들의 가슴에 작은 로빈 새가 되어 남을 것입니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작은 로빈 새’는 디커슨의 <나의 삶> 이라는 시에서 나옵니다. 제가 음악치료사를 하면서 작은 로빈 새를 구할 수 있다면 내 삶을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Q. 회장님의 부군 되시는 분이 부산대학교병원의 김진목 박사님이십니다. 업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서로 많은 도움을 주고받으실 것 같습니다. 두 분께서 어떤 이야기들을 하시는지, 그리고 (색소폰을 연주하신다고 들었습니다) 함께 활동하신 일이 있는지 여쭙습니다.
어떤 한 곳을 한 목적을 가지고 같이 갈 수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인 것 같습니다. 보통 가슴으로 음악을 듣는다고 하지만 음악은 신경에서 듣고 호르몬이 마음을 따뜻하게 하여 느끼는 것입니다. 그 분야에서 머리 위는 남편이, 가슴으로 직접 느끼는 것은 제가 합니다. 그러면서 행복을 느끼는 과정 전체를 만들어 가는 일을 같이 한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입니다.
남편은 의사이면서 색소폰을 15년 동안 했습니다. 환우들을 위해서 일 년에 두세 번씩 가을맞이 음악회, 건강음악음악회 등을 제자들과 함께 연주 합니다. 그러면 환자들이 링겔을 꼽고 휠체어를 타고 연주를 봅니다.
병원에는 심각한 환자들이 많습니다. 그 중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누워있는 환자가 있었습니다. 정말 다른 음악에는 반응도 하지 않았는데, 색소폰과 금관악기의 아주 높은 음에 반응을 했습니다. 환우가 큰 한숨을 푹 쉬었다고 간병인을 통해 들었습니다. 듣고 있다는 것을 알릴 수 있는 것은 심호흡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약이 들어가도 그 환우를 반응하게 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Q. 대한민국 현대인들의 스트레스가 극심합니다. 자살율은 OECD 국가 중 1위 인 것은 많은 분들이 알고 있습니다. 이런 우리나라와 비교한 해외의 음악치료의 현황이 궁금합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음악치료계가 어떻게 나아가야할지도 말씀해주십시요.
사실 세계에는 많은 불화가 있습니다. 우리들은 받아 들어야하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가장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가 노인 문제입니다. 교육을 가장 많이 받은,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가 노인이 되어갑니다. 그래서 노인 계층을 치료하는 것에 굉장히 많은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즐겁고 편안하게 살까’에 음악이라는 것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미 말씀드렸듯이 우리나라도 처음 음악치료가 들어왔을 때 아동을 위한 음악치료만 몰두해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10년 전부터 음악치료사도 노인, 아동, 청소년 세분화가 필요하다고 주장을 했지만 설득이 잘 안되었습니다. 앞으로 치료사의 출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대상에 얼마만큼의 임상경험을 가지고 제대로 된 치료를 할 수 있느냐를 고민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Q. 본지 뮤직채널과 협약을 체결하여 음악과 공연에 대한 자문을 주고 계십니다. 우리나라의 음악과 공연문화는 현재 어떻게 보고계신지 묻고 싶습니다.
음악 장르 마다 느낌이 많이 다릅니다. 예를 들어 록음악이‘크게 정서적으로 좋다’라고 하기에는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독한 약을 잘 쓰면 어떤 약보다도 효과가 좋을 수 있겠죠. 우리 현대인들이 불안하고 힘든 경쟁상황에 있다 보니, 여유롭지 못하고 심리적으로 불안정합니다. 그러면 감각이 예민해지고 영악해집니다. 동요만 봐도 예전보다 선율이 매우 복잡해졌습니다. 그 만큼 음악이 세분화되고 역동이 많아 졌습니다. 30년 전의 록은 불편하고 심장을 뛰는 경험을 하게 해줬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아침에 일어나서도 심장이 그냥 뜁니다. 그 것은 요즘세대가 록이 그렇게 불편한 음악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록적인 선율과 시끄러움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버린 것이죠. 록이 스트레스를 해소, 분출할 수 있는 통로가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록으로 타인의 말을 들을 수 있는 마음이 열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음악치료적 관점으로 지금 뮤직채널이 중점으로 다루고 있는 대중음악, 록이 어찌 보면 21세기의 음악치료와 같이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단원고 아이들, 심리적으로 충격을 받았던 아이들의 가슴을 해소를 시켜주고 새로운 생각을 심어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 스스로 본인의 마음을 바꿀 수 있도록 도와 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뮤직채널에서 자문 의뢰가 들어왔을 때 수락할 수 있었습니다.
Q. 현재 군대 내의 폭력 사태가 대두되고 있습니다. 군대 내에서도 음악치료를 하신 적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군에서 하는 ‘그린캠프’는 여러 가지 절차를 거쳐서 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53사단에서 치료를 한 경험이 있습니다. 적응하지 못한 관심사병 아이들을 보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 아이들의 문제는 군 내부가 아닌 군 이전 가정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케어가 약했고 인정받지 못하면서 좌절과 실패를 겪는 경험들이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무너질 담처럼 쌓였습니다. 아주 수직적이고 폐쇄적인 체계 안에서 일정기간동안 생활을 해야 하고, 답답하고 힘들지만 분출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음악을 가지고 해소를 하게 합니다. 예를 들어, 안치환씨의 <내가 만일> 을 통해서 본인의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활동을 하면서 움츠렸던 것을 마음을 음악을 통해 해소하고. 자신의 마음을 알게끔 도와주어야 하는 것이죠.
Q. 마지막으로 협회와 회장님의 행보는 어떨지요?
외국에는 규모가 큰 병원이 아니라 정말 자연 속에서 음악을 들으면서 좋은 치료를 할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현대적 의료와 심리치료의 통합적인 의학의 메카인 ‘꿈의 클리닉’을 꿈꿉니다. 각 분야들이 병 하나하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전체를 치료할 수 있는 그런 시스템을 가지고 있어야합니다. 그러한 꿈의 클리닉 안에서 정말 통합적인 음악치료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