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봄입니다. 농촌에서 2~3월이면 논밭갈이를 마치고 파종을 준비할 시기입니다. 하지만 요즘 들녘을 돌아보면, 봄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 꽃샘추위 때문이라기보다는 진도 농민들에게 불어 닥친 한파가 아직 가시지 않은 탓입니다.
어제 오랜만에 고군면에서 농사짓는 한 형님을 만났습니다. 부모님 대부터 농사를 물려받아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땀 흘려 일하고 있는 형님입니다. 서로 반갑게 악수를 나누었지만, 그분의 낯빛은 생기가 없이 풀죽어 있었습니다. 그분은 “여태 농사를 지어왔지만 이런 일은 없었는디……”하면서 탄식을 했습니다. 그분은 지금 한창 대파씨를 붓고 있다고 합니다. 가을에는 또 배추도 심을 예정이고요.
제가 ‘그렇게 고생하고서 또 대파만 심을 생각이냐’고 묻자 형님이 고개를 먼산으로 돌리며 말했습니다.
“한 번은 맞아떨어질 때가 있겠지?”
너무나 가슴이 아파서 울고만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진도는 지금 삼재(三災)가 겹쳐 있습니다. 대파를 폐기하고 나니 이제는 배추를 폐기한답니다.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에서 10kg 기준 배추 한 망이 보통 3천 원 안팎이라고 합니다. 게다가 춘삼월인데도 밭에는 온통 봄동배추 천지입니다. 월동배추 시세가 좋지 않으면 봄동이라도 가격이 나왔는데, 이제는 봄동마저 식탁에 올라 아삭한 맛을 뽐내보지도 못하고 로타리쳐질 처지입니다.
<‘태풍에도 끄떡없었는데, 빚더미에 내려앉을 판’>
우리 농업인들은 재작년 연이은 태풍에도 꿋꿋하게 기력을 회복했습니다. 모종을 넣은 비닐하우스가 철근 뭉치처럼 데굴데굴 굴러다니고 논밭 작물들이 꺾여 쓰러지거나 사라져 버렸는데도 우리 농업인들은 훌훌 털고 일어섰습니다. 농사라는 게 자연과 함께 짓는 거니 하늘만 탓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태풍이 없어 오곡백과 풍년이 들었던 작년, 농민들 입에서는 ‘풍년가’가 흘러나오지 않았습니다. 농사는 일등으로 잘 지어놓았는데, 쌀을 제외한 모든 농산물 가격이 반토막이 나고, 진도의 대표 작물인 겨울대파와 월동배추, 봄동은 줄줄이 폐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부에서는 재배면적이 늘고 소비가 둔화되어 채소 값이 폭락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진도의 겨울대파의 경우, 1,600ha로 평균적인 재배면적이고, 배추나 봄동도 가격 폭락이 우려될 만큼 재배면적이 급증한 것도 아닙니다.
<“경지 면적 줄어드는데 과잉생산 때문이라니……”>
농민들은 물가조절용 채소 수입이나 대체재 수입의 확대가 가격 폭락의 원인이라고 말합니다. 자유무역협정으로 수입개방이 가속화되면서 국내산 농산물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고, 정부에서는 정권 초기 시장물가를 조절하기 위해 신선농산물과 식자재 등의 수입을 확대한 탓이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농업 경지 면적과 농업인 수는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는데, 쌀을 제외한 전 품목의 생산량이 급증해 가격이 폭락했다는 논리는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내놓은 장밋빛 경제지표만 보더라도 국내 농산물 값 폭락과는 거리가 멉니다. 이는 신자유주의적 개방 농정으로 인해 농산물 값이 폭락하고 우리 농업이 붕괴되고 있는데도 정부가 그 원인을 농민들의 ‘과잉생산’ 탓으로 호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생산과 판매를 병행한 농상 융합시스템을 강화해 나가야만이 농업소득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해 봅니다.
지금보다 훨씬 못 살았다던 1980년대 우리나라 식량작물 자급률은 50% 정도였는데, 지금은 23.1%로 떨어졌습니다. 그나마 쌀은 80%대지만, 밀과 옥수수 등 기타 작물들은 0~5%대에 지나지 않습니다. 채소나 과일도 70%대로 떨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생산과잉이 아니라 수입과잉이 정확한 표현인 것입니다.
국내산 농산물이 가격 폭락을 거듭하고 있는데도 농자재 등은 원자재 값 인상을 이유로 해마다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우리 농민들 가운데서 80%가 연간 농산물 판매 수익이 2,000만 원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합니다.
농민들은 식량안보와 기초산업을 지켜내는 일에 평생을 바치고 있습니다. 진도 농민들도 다르지 않습니다. 삶 자체가 곧 환경을 가꾸는 일이며, 진도를 지키는 일입니다. 이런 농민들에게 돌아가야 할 소득과 혜택이 개방 농정이라는 미명 아래 어디론가 증발해 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폐기만이 답……민선 5기 진도군 농정의 현주소”>
민선 5기의 진도군 농정을 되돌아봅니다. 농민들은 농산물 수입 개방에 대한 대책을 요구하며, 대안으로 진도군에 친환경농업특구 지정을 제안했습니다. 농산물유통안정기금 100억 조성도 요구했습니다.
친환경농업이라는 명목으로 직불금제도, 시범사업지원 등 여러 가지 사업을 펼치고는 있지만, 친환경 농산물을 ‘진도표 친환경’으로 팔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보면 특구 지정은 멀게만 느껴집니다. 수십억 원을 들여 지어놓고도 커피숖 외에는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진도명품관이 ‘진도친환경농수임산물 공판장’이었다면 어땠을까 상상해 봅니다. 이게 본래 목적이 아니었을까요?
2005년 제정되어 시행되고 있는 <진도군 농산물 안정기금 설치 및 운용 조례>는 ‘과잉 생산된 농산물의 산지폐기 등 가격안정 대책비 및 농업 유통개선 융자금 재원으로 100억 원의 기금을 조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기금은 진도군에 거주하는 농업인이 생산하는 쌀과 채소류(겨울대파, 월동배추, 겨울무)를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제도는 전국 지자체 최초로 만들어진 조례입니다. 농민회를 중심으로 한 농민들이 해마다 반복되는 폐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요구했고, 정부와 지자체 모두 진도 농업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합리적 대안으로 수용했습니다. 그 뒤 전국적으로 이 조례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진도에서는 농안기금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기금을 ‘산지폐기’ 보상금에만 쓰이다 보니, 예방적 차원의 수급조절에는 실패하고 오히려 농산물 폐기를 유도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대체작물 개발을 통한 채소 재배 면적 조절과 품질 향상, 유통 비용 절감과 소비 촉진 등 큰 틀에서 기금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어야 하는데, ‘폐기자금’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진도군 농정 책임자에게 진도 농업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철학이 있었다면, 오늘과 같은 심각한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도대체 진도군은 지금 진도 농업인들을 위해 무슨 일을 하고 있습니까? 농촌경제 붕괴와 농민들의 폐농에 대한 자성과 이를 극복할 수 있는 혁신적인 정책 제시 없이 축제와 행사 준비에만 골몰하고 있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눈앞에 축제보다 평생 진도지킴이인 우리 농어업인들을 먼저 돌아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36년의 공직생활 내내 많은 세월을 진도군 농정을 담당했던 저로서는 너무나 안타깝고 죄송한 일입니다.
<“무슨 돈으로 농사짓나?……태풍에, 폭락에 대출도 어려워”>
지금 진도 농민들 주머니에는 돈이 없습니다. 농산물 유통을 하는 상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웃사촌 농민들을 믿고 외상으로 농약과 비료를 판매한 농자재 상인들도 수금을 하지 못해 울상입니다. 농어민들이 주요 손님인 면 단위 상가는 적막하기만 합니다. 읍내라고 어찌 좋겠습니까? 여기저기 공사판이 벌어지고 축제 준비에 한창이지만 군민들의 얼굴에서는 쉬이 웃음을 읽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 진도의 농민들은 당장 씨앗 값도 없고, 거름 값도 없어 시름에 빠져 있습니다. 큰 태풍이 왔을 때도, 예전에 산지폐기를 했을 때도 이런 정도는 아니었다고 합니다.
많은 농민들이 빚을 내거나 외상으로 농자재를 구입해 농사를 짓고 작물을 팔아 남은 돈으로 외상값을 갚고, 생활비로 씁니다. 외상값을 갚지 못하면 더 이상 외상을 할 수도 없고, 빚을 낼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평생 지어온 농사를 포기할 수도 없습니다. 이게 우리 농업의 현실입니다.
농민들 주머니에 돈이 없으니, 농촌에서 장사하는 상인들도 더불어 죽을 맛이라고 합니다. 누가 농민들을 탓하고 상인들을 탓할 수 있습니까?
<“‘긴급 농업경영안정자금’ 편성해 영농지원 나서야”>
진도군에 요청합니다. 기상재해, 화재, 폭설 등 재난으로 인한 피해를 입었을 때, 정부나 일부 지자체에서 ‘긴급 농업경영자금’을 지원해 주고 있습니다.
농협을 통해 지원하는 ‘농사자금’은 액수도 적고 많은 농민들이 연장대출을 하고 있기 때문에 지원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농어업인 및 생산자단체를 대상으로 하는 ‘농어업경영자금’도 담보와 농어업 배점 경쟁을 통한 융자이기 때문에 담보능력이 없는 농가들에게는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습니다.
‘긴급 농업경영안정자금’은 말 그대로 긴급하게 예산을 집행해야 할 상황이 발생했을 때 진도군수가 편성을 요구해 집행할 수 있습니다. 농어업 영농자금 상환 연기, 영농에 필요한 농자재 무상 공급 지원 등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꽃샘추위가 지나면 농업인들은 농비 걱정으로 잠을 못 이룰 것입니다.
농산물 가격 대폭락과 수산물 생산량 급감으로 진도 농어업인들이 힘겨운 지금, 진도군이 가장 중점적으로 해야 할 일은 축제 준비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농촌을 살리고 우리 농어업인들을 살릴 것인가에 대한 대책을 세우는 일입니다.
저도 공무원 출신이지만, 현장에서 농어업인들의 목소리를 들으니, 호소가 아니라 절규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정부의 농업 개방으로 인한 피해는 이제 막 나즈막한 논두렁을 넘어왔을 뿐입니다. 앞으로 다가올 수입 농산물의 쓰나미를 우리 농업인들이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지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우리 농어업인들에게 당부하고자 합니다. 과거에 진도는 국난 극복의 호국 전적지였으며, 늘 그 중심에는 농어업인들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진도를 변화시키고 발전시킬 수 있는 바탕은 우리 농어민들입니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계시지만, 결코 위축되지 마시고, 이럴 때일수록 목소리를 크게 내주시고 뭉치셔야 합니다.
저는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 제가 태어나 자라고 살아온 진도이기에 어느 누구보다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다면, 어머니의 호미가 쌓아놓은 밭두렁이 무너질 일이 없고, 아버지의 써레가 닦아놓은 논바닥이 내려앉을 일은 없을 것입니다.
올해는 꼭, 결실의 계절에 우리 형제들과 함께 고소득이 동반 되는 ‘풍년가’를 구성지게 불러보고 싶습니다. 힘을 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