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지는 정사이다>
1976년 곽충로 선생의 진도군지가 발간된 후 30여년만인 2007년 대망의 진도군지가 발간되었다.
관내와 관외 70여명의 학자들이 집필에 참여하고 상, 하권 총 1,920여 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대작이었다.
필자는 군지 발간의 편집위원과 집필인의 한 사람으로 참여한 바가 있어 이에 깊은 책임감을 느끼고 군지전반에 관하여 나름대로 검토한 바 있으며 깊은 고민 끝에 결자해지의 심정으로 그 결과를 요약하여 밝혀 보고자 한다.
그러나 부족한 식견과 당돌함으로 비춰지고 또한 실무인 들과 집필인 들에게 누가될까 심히 망설였음이 필자의 솔직한 심정이다.
그러나 군지란 우리군의 정사기록으로 잘못된 곳이 있다면 이는 정정 보안 되어져 후세인들에게 전해주어야 함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사명이기 때문에 거론을 않을 수가 없었다.
또한 이는 연쇄적 오류를 낳아 향토역사를 그릇치고 우리의 정체성을 상실하고 말기 때문이다.
<표지 칼라 화보 검토>
군지의 검토 작업은 방대함으로 여기에서는 먼저 군지의 맨 첫 장에 나오는 표지화보편의 검토내용을 살펴보고자 한다.
군지의 표지화보는 우리군의 대표적 상징의 표상으로 우리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군민의 긍지를 함축하고 있는 분야로 한마디로 우리 군민의 얼굴이다.
07, 군지의 표지화보는 총 160여점, 64쪽 분량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 화보들 중에는 여러 문제점들을 발견할 수가 있다.
다음은 07, 진도군지 의 표지화보중의 여러 문제점을 살펴본 것이다.
1, 알아보기 어려우며 또한 격에 맞지 않는 지도가 수록되어 있다(예: 진도군 전도 등)
2,군지의 표지화보로는 적절치 못한 사진들이 있다.(예: 묘의 사진, 묘군 사진, 제사사진, 해골사진, 상여사진 등)
3,사진 선택이 부실하고 선별에 균형과 형평이 맞지 않는다.(예: 벽파진 이충무공 전첩비는 4분의1쪽인데 반해 임회천은 2분의1쪽, 평화제 사진과 해골사진은 각각 1쪽씩 수록되어 있음)
4,자료들이 부실하다.(예: 1976년 진도읍 사진은 2쪽 분량인데 반해 2000년 사진(연대미상)은 6분의1쪽으로 수록되어 있음)
5,중복된 사진들도 있다.(예: 상여사진과 관매 후박나무 사진은 각2장씩, 남도석성은 3장, 운림산방은4장씩 수록)
6,불필요한 사진 및 누락된 사진들도 있다.(예: 화원목장사진, 진도천, 임회천 등 반면 중요자료의 누락, 첨찰산 봉수대, 군민의 날, 서망항, 진도대교 등)
7,잘못된 사진설명도 있다.(예: 첨찰산과 셋방낙조 등)
8,조잡한 사진들이 있다.(예: 벽파전첩비 사진은 관광사진 이다)
9,불균형 하다.(예: 남도석성 사진은 4장인데 금갑진성사진은 없다, 또한 십일시 시장사진은 2장인데 의신 시장사진은 없다)
10,예향이라고 하면서 그림 한 점이 없다.(예: 소치, 의재, 소전 등 반대로 민속사진은 20여점 수록되어 있음)
이상 표지화보의 검토한 바를 요약하였는데 결론하면 1, 표지화보용으로 찍은 사진은 별로 없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며 2, 화보의 편집에 감수한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등 총체적 부실이라고 밖에는 달리 설명할 수가 없다 하겠다.
<07, 진도군지 중 본문편 검토의 요약>
군지의 화보가 얼굴이라면 본문편은 더욱 중요한 본체인데 본문편 또한 화보의 편집내용과 별로 다를 바 없는 내용들로 살펴지고 있다.
즉 집필인 70여명이 쓴 원고를 그대로 실어 책임감수를 한 흔적이 없이 정사인 진도군지가 발간되었다는 것으로 교정, 정정, 개정, 삭제, 증보 등 보안되어야 할 곳이 많아 숫자로는 표현할 수가 없으며 이를 한 마디로 표현 한다면 ‘정오표’로는 불가능하며‘2007 진도군지 개정 보안본’이 다시 발간되어 야 할 것으로 살펴진다는 것으로 이를 요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