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동안 내 머리 속엔 ‘정치란 무엇인가?’라는 화두가 자리 잡고 있다.
한자를 풀어보자면 ‘바를 정’과 ‘글월 문’이 합쳐져 이뤄진 ‘정’자와 ‘다스릴 치’가 만나 ‘정치’라는 낱말이 되었다.
낱말의 속뜻을 가만히 들여다보자면 ‘글월, 즉 말씀 혹은 메시지를 바르게 다스리는 것’이라고 가늠해볼 수 있겠다.
나라를 이루고 있는 모든 구성원들의 생각과 언행의 기본 요소가 되는 메시지를 바르게 다스리는 것 말이다.
바르게 다스리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이 각자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견해를 공적인 자리에 내놓고, 그 견해들을 함께 살펴보고 이야기한 뒤 합의된 몇가지의 것을 선택해서 공동의 목표로 삼아야 했을 것이다.
인류 역사를 살펴보면, 정치라는 장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들의 범위를 어떻게 정했는가, 하는 것이 시대마다 달랐다.
큰 제국이 생성된 이후부터, 정치에서 소외되는 계층들이 만들어졌고, 그들은 정치 마당에 참여하기 위해 무던히도 투쟁해왔다.
그 결과로 점차 모든 계층들이 그 곳에 낄 수 있었다.
적어도 겉모양으로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정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면, 사람들은 ‘바른 다스림’을 떠올릴까?
또 진정으로 모든 계층들이 다 정치 마당에서 공정하게 자신의 견해들을 피력하고 있는가?
요즘 사람들은 정치를 쇼나 도박에 비유한다.
위의 두 질문에 대해 따져보는 것은 하지 않으려 한다.
다만 나의 삶에 정치가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
오늘은 그것을 가지고 생각해 본다.
나는 이 바닷가 마을이 좋다.
마당 여기저기에 돋는 갖가지 풀잎들이 고맙다.
요즘엔 갓의 여린 잎들이 언덕을 뒤덮는다.
고모는 그 여린 잎들을 따다가 무와 함께 물김치를 담거나, 파와 함께 김치를 담는다.
새콤하게 익은 김치의 맛이 온 몸의 신경을 돌아 머릿속까지 시원하게 해준다.
또 들판에는 쑥과 냉이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무청으로 시래기 된장국을 끓이면 그 국물이 속을 편안하게 달래준다.
겨울은 농한기여서 마을 어르신들도 한가로우시다.
나의 벗들은 언제든지 들러서 난로 위에서 끓고 있는 차를 잔으로 떠서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그 이야기 속엔 청정한 기운이 담겨 있다.
아무런 부족함이 없다.
이 몸이 좀 더 허락한다면, 바다낚시를 따라가서 배 위에 누워 하늘을 바라 보거나, 아무개가 직접 지었다는 소담한 흙집 구경도 가겠지만, 그것이 되지 않는다 해도 벗들은 그 정경과 기운을 실어다가 내게 전해준다.
이 좋은 삶을 정치가 가져다 준 것인가?
지금은 정치를 정치인이 하지 않는다.
언론이 한다.
그것도 바르게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기득권층의 권익만을 챙기려고 하는 일이니 ‘정치’ 말고 다른 말로 바꾸던지 해야 할 것 같다.
정치는 없다.
사업(사사로운 이득을 챙기는 일)만 있을 뿐.
지금의 소위 정치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지는 못하지만, 사람들에게 재앙을 가져다주는 데에는 매우 소질이 있다.
교육을 통해 인간의 욕망을 부풀리는 것, 매스 미디어를 통해 해가 되는 소비를 부추기면서 경제부양이라고 속이는 것, 돈 있는 사람들의 금고를 더욱 채워주기 위해 돈으로 행복까지 살 수 있는 것처럼 위장하는 텔레비전의 드라마나 쇼들, 그런 드라마나 쇼들을 뒷받침하는 손들, 가난하지만 행복한 나라들에게서 배우지 않고, 에너지를 마구 써대면서도 불안에 시달리는 소위 경제 대국들을 부각시키는 것 등.
차라리 소위 정치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 있고 싶다.
소위 정치라고 하는 것이 닿지 않는 곳에서는 사람들이 자연과 함께 행복하다.
몸은 갖가지 능력을 갖게 되고, 정신은 고상하다.
이제 정치에 대한 생각은 이쯤 해서 접으려고 한다.
그것에 에너지를 소모하기에는 이 순간의 삶이 너무나 귀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