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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날짜 [ 2018년04월30일 23시52분 ]
 

잊지 않겠습니다, 천만 개의 바람이 되신 당신

 

 

미수습자 가족과 함께 광화문에서 피켓팅을 하고 있는 고 백순혁님


팽목항 분향소 지킴이로 활동하던 백순혁씨(38)가 지난 27일 급성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2014416일 세월호 참사를 지켜보며 고민하다 직장을 그만 두고, 7월 진도로 내려와 진도실내체육관과 팽목항을 오가며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진도실내체육관에서 희생자 가족들의 담요와 옷가지 등을 세탁하는 일과 심부름을 도맡았다. 희생자 가족들이 팽목항으로 옮겨갔을 때도 다른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팽목항으로 가서 식당 허드렛일과 세탁 등을 지속했다.

 

고인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명절에도 팽목항을 떠나지 못한 이유를 밝혔다.

 

오랫동안 봉사활동하면서 가족들과 슬픔도 기쁨도 나누면서 지내 왔어요. 그런데 11월이 지나면서 정말 힘들어진 게 사실이에요. 정부에서 제공해온 지원과 여러 봉사자들이 다 빠져나갔죠. 하지만 계속해서 팽목항 시설이 멈추지 않도록 도와주시는 분들이 이렇게 많아요. 올 연말은 세월호 가족분들과 잘 지낼 생각만 하고 있어요.”

 

하지만 2015년부터는 팽목항에만 머물지 않고, 희생자 가족들과 안산과 광화문을 오가며 세월호특별법제정과 온전한 인양, 진실규명 활동을 펼쳤다. 박근혜 정권과 맞서 싸우면서 눈앞에서 벌어지는 현실에 견디기 힘들어 자원봉사 활동을 끝내고 돌아가고 싶은 생각도 들기도 했지만, 고인은 끝내 희생자 가족 곁을 지켰다.

 

고인은 2017년 봄, 자원봉사자로 만난 동료와 함께 의신면 침계리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연고지인 광주로 올라갈 수도 있었지만, 아직 미수습자가 있고 참사의 진상규명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팽목을 떠날 수 없다고 했다. 작년 7월에는 진도군청 녹색산업과에 계약직으로 취직해 환경 모니터링 업무를 수행했다.

 

팽목항 분향소에서 희생자 가족들의 빨래를 개고 있는 고인의 모습


고인은 출근하지 않는 날이면 어김없이 팽목항과 목포신항을 오가며 자원봉사를 이어갔다. 그러다 벚꽃이 지고 들녘에 청보리가 물결치던 날, 자신의 트럭을 몰고 일을 갔다오던 길 위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주인 잃은 트럭에는 '그들을 위해 우리를 위해 천만 개의 바람이 되어 주세요'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진도읍 산림조합추모관에 빈소가 마련되자, 고인의 황망한 죽음을 추모하는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세월호희생자가족협의회 가족들과 미수습자가족들, 자원봉사 동료들, 416연대, 세월호 참사 시민상주 모임, 진도시민단체 관계자들 그리고 진도군청 직원들과 자율방범대 대원들이 고인의 귀로를 지켰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인 유민아빠 김영오씨는 페이스북에 팽목항에서 자원봉사를 하던 백순혁(세례명 안드레아)님이 선종하셨습니다.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고 도맡아가며 지금까지 팽목을 지켜주던 청년이었습니다. 우리 아이들과 유가족, 미수습자가족, 팽목을 찾아주시는 시민들을 위해 봉사하며 아파하고 때로는 서로의 아픔을 보듬으며 함께 한 시간들 감사했습니다. 그 사랑과 희생 마음의 나눔을 기억하며 주님 곁에서 영원한 안식을 기원합니다. 우리 아이들과 천국에서 진상규명하는 모습 지켜봐주십시오. 백순혁님 몫까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고 애도했다.

 

한편, 진도군청 녹색산업과 직원들은 고인이 쓰러져서 진도 한국병원으로 실려 왔을 때부터 장례식 마지막 날까지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고인이 가는 길을 배웅했다.

 

녹색산업과 한 직원은 순혁이와 함께한 시간은 짧았지만, 순혁이가 워낙 성실하고 고된 일도 싫은 소리 없이 해냈기 때문에 직원들 모두가 좋아하던 후배였다너무 이른 나이에 떠나보내게 돼 안타깝고 또 안타깝다고 말했다.

고인의 트럭에는 항상 '진실을 인양하라'는 스티커와 노란리본이 붙어 있었다

 

 

[추모글 갈무리]

 

유민아빠 김영오님

유민이가 수습되던 날 팽목 검안소에 들어가니 다섯 명의 아이들이 누워있었습니다.

잠들어 있는 천사들 같았습니다.

 

유민아, 아빠야. 눈 좀 떠 봐

아이를 주물러주면 일어날 것 같아 팔다리를 주물러주었습니다.

그냥 잠든 것 같은데.

아빠가 이렇게 부르면 일어날 것 같은데.

작은 미동도 없었습니다.

태어나서 울어본 일이 별로 없는 나였는데

나도 모르게 울음이 터져나왔습니다.

유민아 제발 일어나 눈 좀 떠 봐

내 앞에 차가운 유민이를 두고 만지면서도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차라리 악몽이길 바랬습니다.

 

백순혁님의 어머님도 장례식장에서 같은 말을 하셨습니다.

우리 아들 잠든 것 같아요. 조금 있다 일어날 거에요. 이게 꿈인가? 아니 나 아직 잘 모르겠어요. 아까 보니까 자는 것 같던데요

 

우리 유민이는 그 추운 바다에서 나와 차가웠지만……아마도 따뜻한 체온이 느껴졌다면 더 절망스럽고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조미선님

3년 전 이맘 때 페친이 되었다. 팽목에 거주하며 가끔 미수습가족과 광화문에 올라와 서명대 앞에서 피켓팅을 하던 팽목항 장기봉사자 백순혁 씨와는.

숫기하나 없고 조용하고 순박한 모습의 그는 늘 검정색 세월호 후두티를 입고 있었다. 별명이 팽거라 했는데 무슨 뜻인가 했더니 팽목의 거지줄임말이란다.

페친이 된 기념이라며 그는 봉사하던 팽목항 세탁소에서 바깥 하늘을 찍은 사진을 내 타임라인에 남겼다. 나도 답례로 광화문 서명대에서 바깥 하늘을 찍어 그의 타임라인에 남기기로 했다.

그리고는 까맣게 잊어버렸다. 이제야 그 약속이 생각났다. 그런데 지킬 수가 없다. 81년생, 아직 젊디젊은 나이인데 왜 그리 서둘러 갔을까?ㅠㅠ

그가 찍은 저 구름 낀 하늘은 왠지 그와 우리 아이들이 살고 있는 나라일 것 같아서 자꾸만 들여다 보게 된다.

순혁씨…… 이 밤 마음이 너무 아프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동민님

먼길 떠나는 의로운 벗 맞이하듯

따뜻한 해무가 가득하고 또 가득하다.

백순혁 의인의 명복을 빕니다.  

 

장훈님

팽목 거지를 아시나요?

팽목거지라는 모멸감 느끼는 이름을 웃으며 받아들인 놈이 있습니다. 순혁이라고 참 순박한 놈이었는데. 그 놈이 오늘 우리 아이들 곁으로 갔네요. 우리가 먼저 가야 할 길……

왜 니놈들이 먼저 가는 거냐. ㅠㅠ

관홍이 종필이형 거기에다 순혁이까지.

이 세월호는 왜 좋은 사람들을 먼저 데려가는지.

 

홍신화님

저랑 진도에서 자봉도 같이하고, 진도 체육관 유가족분들께서 팽목 분향소와 안산으로 이동하신 후 팽거님(팽목거지)은 유가족님들과 함께 안산으로 오셔서 안산과 광화문에서 항상 유가족분들과 함께했던 아우님이셨던 백순혁님.

 

사인은 심근경색이라고 합니다. 진도 실내체육관과 팽목항 분향소에서 상주하시면서 세탁 봉사를 하던 일명 팽거님께서……

 

부디 하늘나라에서는 더 이상 아프지 말고, 별이 된 아이들과 천상영복소에서 세상에서 못 누린 복락 누리시게 팽거 아우님~~!

   

박경옥님

온통 세상이 어둡다. 담양 천주교 공원묘지로 가는 고속도로 길가는 꽃이 피어 있는데 순혁인 갔다. 멀리 멀리 돌아오지 못하는 길을. 얼굴을 보고 싶을까봐 영정 사진 한 장 담아왔다.

백순혁 안드레아

 

묻고 왔는데 실감이 안 난다. 인정하고 싶지 않다. 힘들면 언제든지 전화하라 했지만 전화도 하지 않고.

 

넌 내가 만난 천사였지.

언제 빵 사 올 거야?

언제 밥 먹지?

순혁아!

세월호 팽목항 천사야!

 

팽목분향소 가족식당 앞에서 주인(고 백순혁님)을 기다리는 듯 자꾸만 뒤를 돌아보는 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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