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자. 동화작가, 어린이청소년책작가연대 운영위원장
어둠이 스며든 팽목항에는 오늘도 바람이 분다. 차가운 바닷바람에 옷자락을 당기고 겹쳐 여몄음에도 절로 어깨가 움츠러든다. 춥다.
작년 이맘때에는 두 딸과 진도에 왔다. 팽목항에서 해넘이와 해맞이 행사를 보고 돌아가는데, 문득 바쁜 딸들이 시간 쪼개 진도까지 와 준 게 고마웠다. 그래서였다. 달랑 팽목항 행사만 참여하고 돌아가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든 건. 그해 8월에도 작은딸은 폭염 속에서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종일 기억의 벽 타일만 찍다 돌아갔다. 이 먼 진도까지 와서.
진도대교를 목전에 두고 급히 차를 우회전하여 전망대로 올라갔다. 진도가 한눈에 들어왔다. 울돌목 진도대교는 물론이고, 멀리 북산이 보였다. 또 커다란 새가 두 날개를 펼치고 남쪽을 향해 날아가는 듯한, 마치 북명의 곤이 물을 박차고 붕이 되어 날아가는 듯한 형상의 산과 나는 아직 이름을 모르는 올망졸망한 산, 봉우리들… 본섬 둘레 어지럽게 펼쳐져 있는 작은 섬들과 푸른 바다, 물결. 탄성이 절로 나왔다. 딸들이 말했다. “와! 엄마, 진도 진짜 멋지다!” 그랬다. 진도는 멋졌다. 아름다웠다.
그러나 늘 진도에 오면 304분의 못다한 생에 대한 미안함과 그 가족의 아픔이 먼저 다가와 마음이 무거웠고, 산 목숨을 구하지 않은 정권에 대한 분노와 그런 정권을 존재 가능하게 만든 우리 어른들의 잘못에 봄바람에 하얀 꽃잎이 흩날려도 아름답다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눈물지었다. 비단 나만의 정서는 아니었다. 대개의 사람이 그랬다. 진도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굳이 살펴볼 생각을 못했고, 설령 눈앞에 감탄사를 연발할 만한 풍광이 펼쳐져도 낯선 이를 대하듯 데면데면하였다. 이 얼마나 잔혹한 시대인가? 아름다움이 슬픔으로 자동 치환되어 인지되는 시대라니!
… 아니다. 어쩌면 아파서 아름다운 건지도 모른다. 세상 아름다운 것들 중에 고통의 서사를 품지 않은 게 몇이나 될까. 가던 걸음 멈추고 우렁우렁 소리를 내며 흐르는 울돌목을 한참이나 들여다보는 것은 몇 척 남지 않은 배로 133척이나 되는 왜선과 맞서 싸워 풍전등촉의 조선을 구해낸 이순신과 조선의 험난한 히스토리가 있어서이지 않은가. 도평리 언덕배기 떼무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것은 수많은 민초들이 주검으로 남긴 스토리가 있기 때문이다. 회동은 또 어떤가? 만조 때조차 회동에 서서 모도를 바라보는 것은, 호랑이들이 드글대는 마을에 홀로 남겨진 어느 할머니의 고통에 찬 그리움이 푸른 바다를 갈라 길을 만들었다는 스토리가 있어서 아니겠는가.
우리는 고통의 서사 속에서 비로소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팽목항 또한 그렇다. 부패한 대한민국의 정치권력과 자본은 304명의 애먼 목숨을 차가운 바닷속에서 삶을 마감하게 만들었고, 가족들은 1081일 동안 통곡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1312일째 되는 날에는 끝내 찾지 못한 가족을 심장에 담고 영결식을 치뤘다. 그런데 그 고통과 눈물 곁에는 늘 ‘사람’이 있었다. 함께 울고, 싸우고, 촛불을 치켜든 진도민과 전국에서 찾아온 사람이 있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는 ‘나’를 넘어 ‘우리’로 나아갈 수 있었다. 울음이 잦아들었을 때는 눈길 끝에 서 있는 진도를 발견하고 그 아름다움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함께 울고, 함께 기다린 사람들. 그것은 진정 사랑이며, 희망이다. 물론 짐승도 기다림을 알고 사랑을 안다. 하지만 이 기나긴 기다림과 사랑은 인간만이 품고 지켜낼 수 있는 것들이다. 이 사랑과 희망은 2017년 3.10민주촛불혁명의 도화선이 되었고, 최소한의 것들을 실현해냈다. 이로써 진도는, 팽목항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귀한 역사가 되고 현장이 되었다.
우리는 이 역사를 지키고 싶다. 참혹한 고통의 순간에 나로부터 우리로 향한 걸음을 내딛었던 세월호 가족들의 고통의 서사를, 그들을 품고 희망과 사랑을 실현한 진도와 수많은 이들의 서사가 아로새겨진 현장, 팽목을 오래오래 보고 싶다.
그래서 걷고자 한다. 진도를, 바람 부는 팽목을 걷고자 한다.
팽목항 방파제 벽에는 손바닥만한 타일 4671장으로 만든 ‘세월호 기억의 벽’이 있다. 이 기억의 벽을 만든 동화작가들은 지난 2017년 6월 9일, ‘어린이청소년책작가연대(운영위원장 임정자)’라는 단체를 결성했다. 작가연대 산하에는 ‘세월호대책실천위원회(위원장 김하은)’가 있다.
이 세월호대책위가 지난 11월부터 매달 셋째 주 주말이면 진도에 내려와 길을 걷고 있다. 팽목항을 출발지로 삼아 아름다운 진도의 길을 걷는다.
작가연대 회원만 걷으려는 건 아니다. 팽목항을 찾는 세월호 추모객도 걷고, 세월호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 차마 진도에 발을 들여놓지 못했던 사람들도 찾아와 걷고, 진도의 문화와 예술, 역사를 공부하는 이들도 걷고, 걷는 걸 원체 좋아해서 걷는 동호회 사람들도 찾아와 걷고, 바쁜 도시 생활에 지친 이들도 휴식차 내려와 걷고.... 그냥저냥 모두가 와서 걷기를 바라며 걷는다.
걷기 위해서는 걸을 만한 길이 필요하다. 작가연대는 달마다 걷되 걸을 수 있는 길을 찾으며 걸으려 한다.
하지만 길은 우리 같은 진도 밖 사람이 찾을 수 없다. 길을 아는 사람, 길의 역사를 알고, 스토리를 아는 사람은 진도민뿐이다. 작가연대가 길을 걷는다고 하지만 실제 이 길을 걷게 하는 이들은 김남용, 김남현, 전규석 씨 같은 진도 분들이다.
지금 걷고 있는 길에 이름을 붙였다. <팽목바람길>이라고. 팽목에는 사시사철 바람이 불고, 팽목을 찾는 사람들 마음엔 생명존중과 안전, 평화와 민주와 위안 등 수많은 바람이 있기 때문이다.
진도군에서도 길을 만들고 있다. 진도아리랑길, 미르길, 삼별초길. 길이 많으니 아무래도 전체를 아우르는 이름이 필요할 것이다. 현재로썬 뭐라 칭할 수 없어 그냥 ‘진도길’이라 부르고 있다. 올레길, 둘레길, 자드락길… 길이 많은 시대에 진도 밖 사람들에게 ‘진도길’보다 진도를 알리는 이름이 없기 때문이다.
진도대교에서 진도대로를 통해 팽목항에 이르는 길은 416가족 분들이 걸었던 길이다. 이 길은 ‘416 순례의 길’이니 그대로 두기로 한다. 군에서는 주로 동쪽에 길을 만드니 우리는 진도대교에서 세방낙조를 거쳐 팽목에 다다르는 서쪽길을 걸으려 한다. 그 첫 번째 길이 바로 ‘팽목바람길’이다.
작가연대 회원들이 마사마을 앞 간척지들을 걷고 있다
‘팽목바람길’의 구체적인 코스는 다음과 같다.
<팽목항→팽목마을→진구지수문→마사방조제길→마사수문→마사선착장→산자락해안길→다산기미(옛마사선착장)→잔등너머→넝바위골→마사리→간척지들 갈대밭길→진구지수문→팽목마을→팽목항>
약 11km, 3시간에 해당하는 거리이다. 팽목항을 방문하는 추모객들이 잠시 걷고 돌아가기에 적당하다. 길이 알려지면 조도나 관매도로 여행가는 이들이 잠시 들러 걸을 수도 있겠다. 이 코스는 바다를 끼고 있어 경관이 뛰어나고, 어디서나 팽목항 기다림의 등대가 보인다는 특징이 있다.
팽목바람길은 1차로 세방낙조까지 연장하고, 그 다음 단계로는 쉬미항, 나리방조제를 거쳐 울돌목에 다다르면 좋을 것 같다. 가능하면 예전에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던 옛길을 찾아 걷고, 여의치 않으면 차도를 이용하면 되겠다.
팽목바람길은 4월에 공개할 계획이다. 이 날은 많은 사람들이 내려와 함께 걷고, 진도 이야기를 나누고, 아리랑을 부르고, 진도개 설화를 낭독하는 콘서트를 열어 볼까 한다.
하지만 시간이 없다. 4월에 개통식을 하려면 좀 더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일단 1월 19일부터 22일까지, 작가연대 회원 몇이 내려와 진도분들과 마사에서 해메로 넘어가는 길을 마저 찾아보고, 종아리와 얼굴을 긁어대는 넝쿨가시식물과 무성한 나뭇가지들을 쳐내야겠다. 길안내 리본도 달고, 중간거점인 다산기미에 굴러다니는 쓰레기도 치워야겠다. 2월, 3월에도 길 찾고 만들기 작업을 이어가고… 3월부터는 여기저기 알리는 일을 해야겠다.
진도를 오가면서 거듭해 느낀다. 진도는 세월호의 아픔만 있는 섬이 아니라는 걸. 진도는 세월호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이를 우리 사회의 민주화로 이끌어간 사랑과 희망의 섬이라는 걸.
우리는 더 많은 사람들이 진도를 찾아오길 바란다. 진도에 와서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고, 사랑과 희망을 만나고, 오래 된 진도의 설화와 아리랑을 듣고, 먹거리를 나누길 바란다. 작가연대는 이를 위해 팽목의 바람 속에서 길을 찾으며 계속 걸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