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대파 수급 불안에 농민·상인 모두 멍들어”
진도에 한파가 몰아치고 있습니다. 날씨가 아무리 추워도 주머니가 넉넉하고 마음이 따뜻하면 겨울도 금세 지나가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한 해를 마감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길목에 들어선 지금, 진도의 들녘은 꽁꽁 얼어붙어 녹을 줄 모릅니다.
세밑, 진도의 농민들에게는 견디기 힘든 시간이 될 것만 같습니다.
올해 또 대파가 문제입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서는 지난 6월, 대파 재배 면적이 전국적으로 6% 이상, 대파 주산지인 진도는 전년 대비 4% 이상(약1,700ha) 늘어나 수급 불안으로 인한 가격 폭락이 예상된다며, 진도군을 포함한 대파 생산 지역에 대책 마련을 주문했습니다.
2012년 전남에서는 3,352ha에서 8만3465톤의 대파가 생산되었습니다. 이는 전국 생산량의 34% 규모이고, 전남에서는 신안이 34%인 1,146ha, 진도가 46%인 1,559ha였습니다.
재배 면적으로만 본다면, 아직은 전남이 전국 최대 면적을 차지하고 있고, 그 가운데서도 진도가 최대 면적입니다. 하지만 한때 전국 겨울대파의 70%를 생산하던 대파 주산지의 명성은 사라져가고 있고, 상품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품질과 가격 경쟁력에서 뒤처지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상인들……폭설 없다면, 최악의 가격 파동 예상”
2013년 12월만 보더라도 관내 대파 작업장에서는 진도대파보다 해남과 신안 등에서 생산된 대파를 반입해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진도읍 어느 작업장 관계자는 “해남과 신안대파는 품질 면이나 수량성에도 진도대파에 뒤떨어지는 게 없는데도 평당 4천 원~6천 원에 사오고, 작업해서 올려보내면 진도대파보다 2~3백 원 더 받는다. 진도대파는 바닥시세가 적어도 평당 6~7천 원인데다 수량에서 떨어지기 때문에 폭설과 같은 날씨 변수로 인해 도매가격이 큰 폭으로 상승했을 때 작업해야 수지타산이 맞다.”고 합니다.
의신면에서 작업장을 운영하는 한 상인은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합니다.
“12월 현재, 진도대파는 1킬로그램 한 단에 6~7백원선에 고정되어 있다. 차 한 대 올려보내면 2백만 원이 까지고 있다. 작업을 시작한 지 한 달 남짓 지났는데 벌써 3천만 원 넘게 손해를 보았다. 작업을 중단하고 싶지만, 어렵게 모은 인력을 놀릴 수 없기 때문에 손해를 보면서도 어쩔 수 없이 일해야 한다.”
임회면에서 작업장을 운영하는 어느 상인도 푸념을 합니다. “농민들이 문제다. 가격이 나쁠 때는 정부 탓, 좋을 때는 팔지 않고 투기를 한다. 올해만 보더라도, 폐기가 거론되는 상황인데도 농민들은 7~8천 원을 부르고 있다. 올해 작황이 좋기 때문에 5천 원만 불러도 어떻게 해볼 텐데, 그 가격을 제시하면 뒤에서 욕을 한다.”
지산면의 어느 작업장에서도 쉰 목소리를 냅니다.
“대파 작업장을 운영하는 데 한 달이면 수천만 원에서 일억이 넘는 비용이 들기 때문에 하루에 두 차 이상은 올려 보내야 타산이 맞는다. 하지만 올해는 간신히 한 차만 나오고, 그나마 일이백은 손해가 난다. 미친 짓인 줄 안다. 그러나 저기 파 까는 엄매들하고 외국에서 시집온 며느리들 얼굴을 보면 작업을 멈출 수 없다. 내가 어렵다고 저 분들을 굶게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작업장 관계자들은 하나 같이 “전국적으로 대파 재배 면적이 늘어나고 태풍 등의 영향이 없어 작황이 좋은 올해, 진도 외의 지방에 폭설이나 한파가 불어닥치지 않는다면, 최악의 가격 파동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농민들……1년 농사인데, 평당 5천 원이면 농사 포기하라는 소리”
대파를 주작목으로 농사를 짓는 임회면의 한 농민은 “대파 농사를 때려 치우고 싶어도 마땅히 심을 게 없기 때문에 올해도 6천 평에 대파를 심었다. 대파는 1년 작기라 농약, 농자재, 농작업, 인건비 등이 1년 내내 들어간다. 올해 평당 5천 원에 대파를 사러 오는 상인도 있었지만 손사레를 칠 수밖에 없었다. 그거 받아봐야 절반이 농자재 빚 갚는 데 들어가면, 내년 농사 지을 돈도 부족하다. 당장 생활비도 없어 힘겹지만 버텨보는 수밖에 더 있겠는가?”하며 울먹였습니다.
군내면의 한 농민도 “1년 동안 땀흘려 가꾸고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웃거름을 주고 배토를 하던 대파밭인데 이제는 정이 떨어져 그 옆을 지나가고 싶지 않다.”고 말합니다.
고군면 지막리를 지나다 만난 한 농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대파 폐기할 때마다 이제는 더 이상 대파 농사를 짓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막상 다른 걸 찾아도 심을 게 없다. 나도 콩이나 서숙처럼 비닐 씌우지 않고 지을 수 있는 농사를 해 보았지만, 진도에서는 농협 등에서 수매를 해 주지 않기 때문에 중간 수집상에게 싸게 넘겨주고 나면 남는 것도 없다. 그나마 대파는 가격이 좋을 때는 목돈이 되기 때문에 심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또 군내면에서 단호박을 재배하는 한 농민도 “대파 재배하던 밭에 단호박 7천 평을 심었는데, 작년에는 태풍에 죽고, 올해는 장마철 역병으로 대부분 썩어버린 탓에 몸과 마음이 상하고 는 것은 빚뿐이다. 단호박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특용작물을 시도해 봤지만, 판매 유통 비용이 많이 들고 목돈이 되지 않기 때문에 내년에는 나도 다시 대파를 심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며 한숨만 푹푹 쉽니다.
한때 농산유통과에서 대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저로서는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대파 작업장에 가서 농민들과 상인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눈물이 난 것은 대파 껍질을 벗길 때 맵게 풍겨나는 알린 성분 때문만은 아니겠지요.
“반복되는 대파 산지 폐기……백약이 무효인가?”
진도대파는 2005년에 500ha를 산지 폐기했고, 2007년에는 전체 면적의 10%인 200ha를, 2009년에는 160ha를 자율 폐기해 출하량을 조절했습니다. 1월말~2월초에 폐기에 들어갔기 때문에 설 대목 수요와 맞물려 가격 상승 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
저는 얼마 전에 농민회 회원들을 만나 의견을 들었습니다. 그 동안 진도대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앞장서서 싸워왔던 분들이기에 반복되는 이 문제를 해결할 복안이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대파 문제 해결을 위한 요구사항(진도군농민회 제공)-------------
농산물가격안정기금의 운영 원칙 안에서 농협이 사업할 수 있도록 아래와 같이 제안한다.
1. 전체 재배 면적의 20%인 100만 평 물량(1만 톤)을 농협에서 계약 출하한다. 최악의 경우에는 수매 후 폐기도 감안해야 한다.
2. 농협에서 현실적으로 매취 판매는 어려우니 수탁이나 알선 판매로 계약 물량을 처리한다.
※ 실행 방안
○ 농민
계약한 물량은 농협을 통해서만 거래하고, 거래 정산서를 농협에 제출한다. 정산대금의 1% 이내에서 자조금을 조성한다.
○ 농협
뭇단 출하, 위탁 가공 출하 등의 방안을 도입한다.
마을별 정보(재배 면적, 판매 농가수, 출하 면적)를 정확하게 통계화해 산지수집상에 제공하여 판매를 알선한다.
○ 진도군
농안기금을 활용해 출하비용을 지원하고 목표가격을 설정해 미달금액에 대해 지원한다. 장기적으로 농산물 가격 상하한제를 제도화한다.
----------------------------------------------------
농민회가 제시하는 해결책은 농협에 농업안정기금(45억)을 지원해 전체 진도대파의 20%인 100만 평 물량을 수탁이나 알선 판매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현재 농협이 계약한 물량으로는 턱 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일반농가의 물량도 추가계약을 해서 수급을 조절하면 포전단가를 7천 원선 정도로 유지시킬 수 있다는 계산입니다.
저도 폐기라는 극단적인 처방을 하기 전에 대파 수급을 조절할 수 있는 복안이라는 판단을 했습니다. 대파 파동이 막상 닥치면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폐기 밖에 없습니다. 지금까지는 10% 자율 폐기를 통해 수급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상인들은 농민회의 안에 대해 다른 의견을 내놓고 있습니다. 올해는 진도대파를 폐기한다고 해서 시장 가격이 크게 올라가지 않을 거라 예측을 합니다. 전국적으로 생산량이 늘어나고 있고, 신안과 영광 등 나머지 대파 산지의 가격이 한단 기준 1,000원대 이상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랍니다. 일정 기간 지속적으로 가격이 폭락해야 농안기금 지원 근거가 되는데, 이마저도 여건이 맞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경우, 진도에서만 대파를 폐기한다면 다른 지역 대파 값만 상승할 것은 뻔한 일입니다. 그 때문에 진도군은 최근 농식품부 관계자와 협의하면서 “신안 등 다른 지역도 동시에 10% 산지 자율 폐기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그 관계자는 “다른 지역의 대파값은 아직 괜찮은 편이라 10% 폐기안을 따를지 미지수”라는 답변만 받았다고 합니다.
최악의 경우, 진도대파를 자율 폐기한다 해도 가격 회복이 되지 않는다면 농민들은 폐농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끔찍한 일입니다.
“대파 주산지로서 지위 상실 위기”
대파 농업의 현실을 모르시는 분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농민들 스스로 대파 재배 면적을 줄여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입니다. 하지만, 진도 농민들이 대파 재배 면적을 줄인다고 신안이나 영광, 함평, 전북의 대파 재배 농가들이 면적을 줄이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전국적으로 대파 재배 면적은 늘어나고 있고, 역으로 진도의 시장 점유율은 떨어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영광에서는 드넓은 간척지 논을 밭으로 개간해 대파를 심고 있을 정도입니다.
진도에서 대파 재배 면적을 줄인다고 해서 대파값이 좋아지는 것도 아닙니다. 날씨 변수로 인해 대파값이 상승했을 때 진도대파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대파 농가의 평균 수익에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이런 가운데 전국 대파 생산량에서 50%를 상회하던 진도대파가 이제는 40%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2012년 38%였으니, 올해는 35% 점유율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렇게 가다가는 진도대파라는 브랜드마저 사라지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진도대파는 지난 2010년 3월에 지리적표시제 제61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진도대파만이 가지고 있는 우수성을 국가에서도 인정해 준 것입니다.
‘한겨울에도 땅이 얼지 않으며 청정 해풍과 풍부한 일조량으로 식이섬유 함량이 많아 대파 특유의 맛과 향이 짙다. 대파 잎을 꺾었을 때 나오는 끈끈한 액체와 단단한 육질 덕분에 수분이 금방 스며들지 않아 국에 넣었을 때 가라앉지 않고 떠 있는 특성을 보이며 신문지에 잘 싸서 섭씨 5도 정도에 보관하면 100일 이상 장기 저장해도 끄떡없다. 고려 때부터 재배되기 시작해 현재 연간 7만톤에 육박하는 생산량을 자랑한다.’(<지리적표시 농림수축산물 총람>)
“(주)진도청정푸드밸리 어디로 가고 있는가?”
진도군은 진도대파의 명성을 높이고 진도 특산물에 대한 권리 보호와 브랜드 가치를 향상 시킬 목적으로 2010년 1월 (주)진도청정푸드밸리를 출범시켰습니다. 진도군 8억6,800만 원, 진도농협 2천만 원, 선진농협 2천만 원, 서진도농협 5천만 원, 동은 AT 1천만 원, 농민소액주주 4천400만 원 등 총 자본금 18억2,000만 원이 출자된 주식회사입니다.
푸드밸리는 진도 대파를 원예브랜드 육성사업 대상으로 선정하고, 대파 가공공장과 저온저장고, 선별, 포장시설 등 선진형 유통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총 165억 원을 투자하기로 했습니다. 진도군은 ‘진도대파를 차별화된 파워 브랜드로 육성하고, 겨울 채소의 수급 안정을 위해 설립했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2013년 현재, 푸드밸리는 운영손실금이 3억7천만 원에 달할 정도로 경영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푸드밸리 총 출자금 가운데 12억 원이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담보로 되어 있어 운영자금으로 지원받을 수 있는 자금은 5억 원도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푸드밸리는 설립 때부터 사업 원칙 위반과 비위성 운영으로 구설에 올랐습니다. 출범 4년만에 별다른 실적도 없이 대표이사가 세 번이나 바뀌었습니다.
푸드밸리의 한 관계자는 “설립 초기 사업 운영 원칙 위반으로 인해 운영자금 60억 원을 회수당한 탓에 사업장 운영에 필요한 시설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푸드밸리의 중요재산 관리 대장을 보면, 64억 원의 대파종합처리장, 20억 원의 탈피처리라인 외에도 8억 원 상당의 대파세척 및 절단라인이 포함되어 있고, 가공에 필요한 기자재들도 구비되어 있습니다.
관내에는 민간 작업장이 70여 곳 정도 있다고 합니다. 영세한 민간 작업장 한 곳에서 하루에 ‘반입-탈피-포장’ 단계를 거쳐 진도대파 상품을 작업해낼 수 있는 물량은 5톤 차량 1~2대라고 합니다.
100억 원 넘게 투자해 최신 시설을 구비한 푸드밸리에서도 하루 처리 물량은 1대 정도라고 합니다. 그나마 겨울철에만 라인이 가동되고 7개월은 개점휴업이라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대파 문제 지속적 해결을 위한 농민/상인/관계기관 상설 대책위원회 구성해야”
현재 진도대파 문제 해결을 위해 농민단체와 농협, 관계 기관이 협의회를 구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해법이 각각 다르고, 그 해법에 대한 확신도 분명하지 않습니다. 푸드밸리 최대 주주인 진도군이 이 눈치 저 눈치만 보고 있는 동안, 진도 농민들의 마음은 동파가 될 지경이고, 지역 경제는 갈수록 침체될 뿐입니다.
진도대파는 진도 농민들과 유통인들에게 생명줄입니다. 진도 상가가 웃고 울고는 그 해 대파 가격에 달려 있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대파 문제! 어제 오늘만의 일이 아닙니다. 특단의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앞으로도 계속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당장, 올해 대파 수급 문제 해결부터 내년 대파 재배 면적 조절, 3개 농협 및 푸드밸리 계약재배 확대, 민간 대파작업장 시설 현대화 지원 등 풀어야 할 문제들이 산적해 있습니다.
저는 대파 농가와 작업장, 관계기관 담당자들을 만나면서 다시 희망을 얻었습니다. 진도대파가 이대로 죽지만은 않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어려운 상황인데도 농민들이 대파 농사를 포기하지 않고, 해마다 민간 작업장들도 늘고 있으며, 진도군과 농협도 푸드밸리라는 주식회사를 세워 진도 채소의 중심을 ‘대파’에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어떻게’만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대파에 병이 들이닥친 뒤 농약을 하게 되면, 대파도 망가지고 농약 값도 몇 배로 들게 됩니다. 예방이 최선입니다. 모두 머리를 맞대면 해결할 수 있습니다. 아니, 꼭 해결해야 합니다!
2014년 갑오년(甲午年)은 청말띠 해입니다. 서양에서는 행운을 상징하는 유니콘이라 하고, 동양에서는 진취성·활력을 뜻한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진도는 대파로 겨울이 푸르른 초원입니다. 새해에는 우리가 가꾼 대파밭으로 행운의 말이 힘차게 달려나갈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주간진도신문에서는 지역현안에 대한 군민들의 의견기사를 적극적으로 환영합니다. 현장 르포 형식의 기사문으로 작성해 보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