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초 봄인가 했더니 바람 많이 불고 때 아닌 눈보라가 치는 날 오후.
어젯밤까지도 장사를 하던 동네가게 앞에 대여섯 명의 장정들이 들이닥쳐 식당 집기들을 마구 끄집어내 차에 실고 있었다.
이웃들 모두가 의아해하며 “무슨 일이냐” 물어보니 “임대료를 내지 않아 법원에서 강제명령이 내려졌다”고 한다.
막연하게나마 들었던 강제명령이라는 실체를 눈으로 직접 보니 약자로서의 오싹함에 몸이 떨려온다.
5층짜리 건물에 비워 있는 것이 3개 층 이었다.
아니 이젠 4개 층이 되나보다.
그동안 3.4층 세입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계약기간까지 버티다 그냥 나갔는데 오늘 사건의 세입자는 1층에서 식당을 하던 이다.
초기자금에 권리금이라는 걸 너무 많이 주고 인테리어비용으로 투자한 금액이 너무 많았단다.
그래도 미리 보증금이라도 빼서 나가려했는데도 집주인은 귓등으로 듣지도 않고 “알아서 빼가라” 하며 새로 계약될 때는 터무니없는 임대료인상을 꼭 덧붙인다.
안 그래도 기간되면 인상하려고 했다면서...
건물주로서 세입자들의 입장은 전혀 없는 것이다
실상이 이렇다보니 속수무책으로 계약기간 지나고도 한참이나 더 버티다 결국은 쫓겨나게 된 것이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을 때는 반짝반짝 윤이 나고 제 몫을 다해주니 값으로 매길 수 없는 가치를 부여하지만 저렇듯 내팽개치니 갈기갈기 찢기고 구겨져 고물밖에 더 되나싶다.
이곳뿐만이 아닌듯하다.
요즈음 어디든 지나다니다보면 겨우내 삭막하리만치 드문드문 닫혀있던 상가들의 문이 서서히 열린다.
말끔했던 벽지며 천정의 인테리어들 다 뜯어내고 다 걷어내어 속살들을 드러낸다.
나락으로 떨어질 대로 떨어진 서민들의 찢긴 마음과 다를 바 없는 모습들이다.
2년간의 계약기간동안 인건비는 고사하고 임대료조차도 감당할 수 없었던 세입자들의 절규와도 같은 비명소리처럼 쿵쾅거리는 소리가 남의 일 같지 않아 마음이 아프다.
강한 포부와 희망으로 시작된 일명 내장사 한다. 라는 자영업자들..
흐르는 시간만큼이라도 같은 발걸음의 경기였더라면 풍족하진 않아도 견딜만큼은 되었을 텐데..
결국 포기하고 싶어도 임대 계약기간 이라는 게 있어 임대료 밀려가며 속수무책 끝나는 날만 기다리게 된다.
그나마 보증금이라고 몇 푼 걸려있던 거 다 없애고 빈 털털이로 나가는데 거기에 한 술 더 떠 건물주들은 원상복귀를 해놓고 나가라 한다.
평생일한 직장에서 정년퇴직해 퇴직금으로 시작했었다던 빵집도, 풋풋한 아가씨들 둘이서 시작했던 꽃가게도 셔터를 내린 것이다.
이렇듯 힘없이 내 몰리듯 쫓겨 난 그 자리에 또 다른 단장이 시작된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변화되지 않는 서민들의 고달픈 삶은 돌고 도는 것이다..
나도 만약 건물주입장이라면 저럴 수밖에 없었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